신기한 ‘한자 점(占)’ 이야기
2013년 04월 23일 15시 46분 입력

▲한자는 언어뿐 아니라 예술이나 점술에도 이용될 만큼 내포가 매우 풍부하다.
[시사중국] 한자(漢字)를 이용해 점을 보는 것을 ‘측자(測字)’라고 부른다. 측자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주(周)나라 시기부터 생겼고 당(唐)과 송(宋)나라 시기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송의 황제 휘종은 점술에 능하다는 사석(謝石)의 측자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조(朝)’자를 쓴 후 환관을 시켜 사석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사석은 글자를 보고는 환관을 쳐다보면서 “이것은 당신이 쓴 글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관은 기어코 자기가 썼다고 우겨댔다. 사석은 환관에게 “이 글씨는 ‘지금은 존귀하다’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환관은 “만약 내가 쓴 게 아니라면 누가 썼는지 맞춰 보시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석은 “이 ‘조(朝)’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10월 10일(十月十日)이 되는데 바로 이 글자를 쓴 사람이 이 날 태어났다는 뜻입니다”하고 말했다. 바로 휘종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사석은 ‘훗날 미개하고 황량한 먼 곳으로 유배된다’는 의미 역시 이 글자와 관련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환관이 돌아가서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아뢰자 휘종은 사석을 궁으로 불러 그에게 점술과 측자를 하게 했다. 황후와 왕비들은 모두 사석의 영험한 점술에 놀라워했으며 휘종은 사석에게 많은 상금과 함께 관직을 내렸다.

 

얼마 후 ‘정강의 난(靖康之難)’이 일어났고 북송은 멸망했다. 휘종은 금나라 태종에 의해 폐위되어 용포가 벗겨져 포로가 된 채 평민으로 오국성(五國城)에 갇히게 됐다. “지금은 존귀하나 훗날 미개하고 황량한 먼 곳으로 유배된다”는 사석의 예견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남송 시기, 고종 황제가 어느 날 평민복 차림으로 외출을 했는데 마침 길에서 사석과 우연히 마주쳤다. 고종은 그가 곧 점술로 유명한 사석임을 알고 질문을 던졌다. 고종은 지팡이로 땅에 ‘한 일(一)’자를 쓰고는 사석에게 “당신은 내 신분을 알아맞힐 수 있는가?”하고 물었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고종은 생각했다. 그러나 사석은 “흙 토(土)자에 일(一)자를 더하면 왕(王)이 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놀란 고종은 이번엔 땅에 ‘물을 문(問)’자를 썼다. 그러자 사석은 “좌측에서 봐도 ‘임금 군(君)’자이고 우측에서 봐도 ‘임금 군(君)’자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고종은 사석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번에는 땅에 ‘봄 춘(春)’자를 써보였다.

 

‘춘’자를 본 사석은 한참 말이 없다가 탄식을 하며 “‘춘(春)’자가 비록 좋긴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머리에 있는 ‘진(秦)’이 너무 무거워 ‘태양(日)’을 누르니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하고 답했다.

 

이는 당시 간신 진회(秦檜)가 권력을 독점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고종은 자신의 털끝만한 것까지도 똑똑히 알아내는 사석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를 알아보고 예를 갖추려 했던 사석에게 황제는 자신이 평민복 차림이므로 예를 받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 그만두라고 했다. 고종은 사석에게 탄복해 그를 조정 관리로 등용하려고 했으나 사석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옛 사람들은 ‘세상일은 모두 정해진 것’이라고 믿었다. 황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신(神)의 배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알려준다.


이정진 sscn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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